제목 [기본] 법정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날짜 2022.05.14 07:44
글쓴이 이옥례 조회/추천 92/0
올해 들어 계속 법정(法頂) 스님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에 대해서 글을 쓸 일이 생겨서입니다. 새롭게 읽은 글도 많습니다만 예전에 읽은 글들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법정 스님의 글을 읽다보면 불교교단이나 불교신앙의 행태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시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근본취지가 바로 ‘본래 의미’와 달라진 것을 ‘본래 의미’로 되돌리고자 해서입니다. 스님에게 개혁이나 유신은 바로 그런 ‘본래 의미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말의 본적지에 조회를 해보면 나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의 ‘Namo’ 또는 ‘Namas’에서 한자(漢字)로 음역한 말인데 돌아가 의지(歸依)한다는 뜻. 아미타불(阿彌陀佛)은 ‘Amitāyus, Amitābha’에서 온 말로 무량수불 무량광불(無量壽佛 無量光佛)을 뜻한다. 어떤 경전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멀리 십만억(十萬億) 국토를 지나서 있는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주재하는 부처님으로 되어 있다. 그 세계에 가고 싶은 희망자는 나무아미타불을 지극하게 부르면 그곳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정토삼부경’의 요점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글 특유의 비판적 언급은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러나 불타(佛陀)의 교설(敎說)이 어디까지나 청중의 수준에 따라 말해진 방편설(方便說)임을 고려할 때 정토(淨土)가 반드시 서쪽으로 그 많은 세계를 지나서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 방편설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번뇌를 떠나서 해탈하고 고뇌를 떠나서 행복에 이르게 하는 방편을 설하는 것입니다. 다만 ‘청중의 수준’이 달라서 어떤 경전은 어떤 수준에 맞추어진 방편이고 또 다른 경전은 또 다른 수준에 맞추어진 방편입니다. 법정 스님은 지금 “나무아미타불”을 말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서 설해진, 저 같은 근기의 사람들을 위해 서쪽에 있다고 하는 정토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토가 반드시 서쪽에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역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나무아미타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서방(西方)은 동방(東方)에 대립된 서방이 아니라 아미타불이 계신 곳이 서방이라고 말입니다. 상대적인 서방이 아니라 절대적인 서방이므로 서방은 곧 정방(正方)이자 중방(中方)이 됩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지금 그런 절대적인 방향 속에서 정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곧 부처다. 마음이 청정하면 그 자리가 정토다.’ 이와 같은 직선적인 교설로 미루어 보면 불교의 초점은 내세(來世)에 있지 않고 분명히 현세(現世)에 있는 것이다.” 정토신앙은 참 좋은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킬레스 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세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지금 당장 이 현세를 살아가는 데 소홀한 것은 아니냐?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이런 문제제기가 가능합니다. 법정 스님께서도 지금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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