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④② 법성사에 가다 날짜 2017.03.13 10:58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805

.. 광주는 장안(長安)에 버금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다.

뒤로는 산이 마치 병풍처럼 감싸고 앞은 바다가 탁 트인 그런 곳이다.

기후는 일 년 내내 온화하여 식량 걱정이 없고,

시가지는 꽃으로 뒤덮여 사계절이 늘 향기로 가득했다.

풍수지리상으로도 보배로운 땅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게다가 절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어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달마가 광주 성문 안을 들어섰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등불로 밝혀진 광주의 시가지는 화려함이 한결 돋보였다.

뭇 사람들로 번잡한 밤거리였지만 달마의 모습이 워낙 이채로워 금방 사람들 눈에 띄었다.

시커먼 눈썹에 왕방울 같이 생긴 눈에다 기골이 장대한 불골선풍(佛骨仙風)의

이방인을 사람들이 놓칠 까닭이 없었다.

달마의 주변엔 삽시간에 구경꾼들이 들끓었다.

이 사람이 바로 천축의 28대 조사인 보리달마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소식은 지체없이 광주 관아로 전해졌고 자사(刺史)인 소앙(蕭昻)에게도 보고되었다.

자사 소앙은 매우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는 천축의 불교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조예가 깊었다.

향지국의 셋째 왕자인 보리달마에 얽힌 세세한 일화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큰스님이 멀리 바다를 건너 양성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들은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넓고 넓은 저 바다를 건너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왔을까.

날개를 가진 새라도 오기 힘든 거리인데 그것을 건너온

것을 보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불법을 체득한 조사가 틀림없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이 이에 미치자 마음이 급했다.

즉각 영을 내려 달마를 관아로 모셔 오게 했고,

주요 관원들을 대동하고 문 밖까지 나가 직접 영접했다.

그리고 달마 조사를 성 안에서 가장 유명한 법성사(法性寺)로 모시도록 했다.

법성사는 양성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절 문은 서쪽을 향해 있고, 누런 담장에 푸른 기와가 잘 어울렸다.

날아갈 듯한 처마 밑에는, 세로로 ‘법성사’란 주련이 걸려 있었다.

오래 전에 천축의 고승 법다라(法多羅)가 쓴 글씨라고 하는데 방금 쓴 것처럼 생기가 감돌았다.

대웅보전은 금빛과 푸른빛으로 휘황찬란했다.

대웅전은 벽 전체에 향나무 가루와 옻을 섞어서 만든 특수 도료(塗料)가 발라져 있었다.

게다가 대들보와 기둥도 모두 향단목을 써서 대웅전 안이 온통 향나무의 그윽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곳에 쓰인 향단목은 백 년 이상된 거목들로 금은보다도 값지다고 회자되었다.

절 안에는 수십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꾸불꾸불한

구곡(九曲)의 회랑(回廊)이 규모의 장엄함을 돋보이게 했다.

절 한 구석에는 종고루(鐘鼓樓)가 높이 솟아 위엄을 뽐냈다.

이 누각 안의 청동종은 무게가 엄청났다.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북도 둘레가 두 자가 넘었다.

새벽에는 종을 치고 저녁엔 북을 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 소리는 양성의 성 안 뿐만 아니라 주변 백 리 밖까지 울려 퍼졌다.

법성사의 주지는 학덕 높기로 이름난 광지(廣智) 법사였다.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에서 스님들이 몰려들었다.

법성사는 건강(建康)의 동태사(同泰寺), 보화산(寶華山)의 융창사(隆昌寺),

천태산(天台山)의 광조사(廣照寺), 낙양(洛陽)의 백마사(白馬寺)와 함께 중국 5대 사찰의 반열에 들었다.

법성사의 종고루에서 저녁 북소리가 울린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절 안은 어둠의 심연(深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광지 법사의 방은 노란 커튼이 드리워졌고 촛불과 단향의 가는 연기가 어울려 춤을 추었다.

주지 스님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동안(童顔)인 스님은 눈을 감은 채 합장하고 입 속으로 경전을 외우는 것 같았다.

지극한 나이를 나타내듯 머리엔 희끗희끗 학(鶴) 같은 기상이 엿보였고

흰 눈썹은 인자한 마음씨를 드러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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