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②④ 보시<布施>의 전범<典範> 날짜 2017.02.24 15:50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655

도견왕의 사과를 받은 바라제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제왕이 승려에게 머리 숙여 잘못을 비는 경우란 흔치 않은 일이기에 더욱 지극하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예가 지나치십니다.”

그러나 도견왕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덕이 모자라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불법의 요체를 일러 주시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십시오!”

바라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무성한 대나무숲을 비추고 있었다.

바라제는 그런 풍광과 촛불에 비치는 도견왕의 얼굴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대왕께 제가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지요.

우리가 모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대차국(大車國) 국왕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국왕께서 세 왕자를 데리고 산골짜기로 놀이를 나갔더랍니다.

그 곳엔 호랑이 한 마리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고 나서 이레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앙상하게 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서 헐떡이고 있더랍니다.

그런 광경을 본 첫째 왕자는 호랑이가 배고픔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새끼라도

잡아먹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왕자는 굶주린 호랑이를 구해 주긴 해야겠는데 도와 줄 방법이 없다고 한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버지와 형들이 한참을 앞서 갔는데도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생령은 다만 자기 몸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대자대비란 그런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몸마저 내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왕자는 큰 서원을 세운 듯 굶주린 호랑이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옷을 다 벗은 맨몸이 되어 호랑이 앞에 엎드려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고 합니다.

‘나는 법계중생을 위하여 무상의 보리를 구하려고 뜻을 세웠도다.

큰 자비심을 일으켰지만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니 이제 마땅히 범부의 몸을 버리려 한다.’

셋째 왕자는 호랑이가 잡아먹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왕자의 장엄한 행동에 놀랐는지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왕자는 호랑이가 너무 굶어서 기력이 쇠잔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 여기고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호랑이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던져 먹이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옆에 있는 대나무를 꺾어 죽창을 만들어 자신의 목을 찔렀습니다.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자 비로소 호랑이는 그것을 혀로 핥기 시작했습니다.

피 맛을 본 호랑이는 거침없이 왕자의 몸을 다 먹어 치웠고 왕자는 뼈만 남게 되었답니다.

이 때 하늘에선 꽃송이가 비처럼 쏟아지고 대지가 진동했답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놀란 국왕과 두 왕자가 되돌아와서 보니 호랑이 주위로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뼈만 이리저리 흩어져 있더랍니다.

국왕과 두 왕자는 너무나 슬퍼 한없이 통곡하며 유골을 수습한 뒤 탑을 세우고 공양했답니다.

셋째 왕자의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이런 정신이 바로 불교가 지향하는 보시(布施)의 전범(典範)인 것입니다.

이러한 보시야말로 최고 경지의 보시이며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생사고해(生死苦海)를 넘어서 불성(佛性)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