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②⑤ 진정한 활불 날짜 2017.02.24 16:01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636

도견왕은 바라제가 들려준 고사에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셋째 왕자는 귀하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교만하지 않았고

하찮은 짐승조차 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구제하려고 자기 몸을 던지지 않았는가.

그러한 숭고한 정신과 행위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도견왕은 생각할수록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난날을 사죄하는 뜻에서도 삼보(三寶)를 진심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바라제에게 몸을 굽혀 몇 번이나 절을 하며 말했다.

“스님께서 이토록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계시는지요?”

바라제는 도견왕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흐뭇해 했다.

그러나 도견왕을 올바로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보리달마 말고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바라제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나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스승은 바로 대왕숙(大王叔)이신 보리달마이십니다.”

도견왕은 보리달마의 이름을 듣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얼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천학비재한 몸으로 욕되게 왕위를 계승하고 삿된 것을 좇아 바른 것을

 내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대조사이신 숙부조차도 잊고 있었으니

이보다 죄가 더 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스님께서는 이 불경스런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왕숙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어느 곳에 계신지, 당장 왕숙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왕의 청을 받아들이지요. 이것도 다 인연이 아닙니까.”

바라제가 말을 마치자 한 줄기 바람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구름이 일고 안개가 피어 올랐다.

그 속으로 바라제는 몸을 날려 표표히 사라졌다.

도견왕은 무엇에 홀린 듯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바라제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견왕은 정신을 가다듬어 칠흑같이 어두운 사방을 돌아보았다.

밤의 고요함이 몸 속으로 스며들어 마음까지 숙연해졌다.

거듭 반성하는 속내가 그의 등줄기 구석구석에서 땀방울로 흘러내렸다.

바라제는 청봉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때마침 보리달마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예불을 끝마친 상태였다.

바라제는 기쁜 얼굴로 보고했다.

“도견왕이 사신을 보내서 성조(聖祖)를 모셔가기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보리달마는 흐뭇해하면서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도견왕이 비속한 인간이 아닌 것은 누구보다도 보리달마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있는 사람을 만나 심요(心要)의 강설을 들으면

다시 삼보(三寶)를 숭배하고 불교를 빛내는 길에 들어서리라고 확신했었다.

보리달마가 바라제와 함께 뭇 제자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 멀리 산 아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라제가 말했다.

“벌써 사신들이 당도한 것 같습니다. 조사께서는 준비를 서두르시지요.”

보리달마는 제자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자신이 절을 비운 동안의 모든 일을 바라제에게 맡기며 꼭 해야 할 일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리달마는 사신들의 안내를 받으며 왕궁을 향해 떠났다.

도견왕은 왕궁 10리 밖까지 향을 피워 보리달마를 영접했다.

도견왕은 새삼스럽게 숙부인 대조사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보리달마의 얼굴은 밝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표정은 장엄했고 걸음걸이는 느린 듯싶었으나 장중했다.

온 몸에선 성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도견왕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숙부는 진정한 활불(活佛)이시구나!’

도견왕은 땅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흩뿌렸다.

자기의 잘못을 빌면서 숙부께 참회의 기도를 올릴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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