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③⑤ 불연(佛緣)은 남천축에서 일어나 동토(東土)에서 익는다고 날짜 2017.03.12 10:52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795

보리달마가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날, 천축의 불문이 이처럼 많은 종파로 갈라져 파쟁을

일삼는 상황에서 선종의 힘은 약할 수밖에 없소.

나 한 사람만 떠난다면, 분쟁도 수그러들 것이고 선종 또한 안녕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나도 마음이 편안할 것이고….”

막의가 말했다.

“사형께서는 27대 조사이신 반야다라 존자의 전법제자라고 알고 있는데,

28대 조사의 자리를 그토록 쉽게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달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비록 선종이 아직은 힘이 약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숲의 나무들과 같이 많소.

선종의 법통이 나로 끝날 수도 없거니와 뒤를 이을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소.

반야다라 조사께서는 오래 전에 나의 인연이 동녘 땅에 있다고 하셨소.

그래서 그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오.

그 땅에서 선종을 빛내면 그 또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소.”

막의는 사형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동녘 땅으로 가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이미 확고하게 결정된 이상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막의는 길게 한숨지었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사형. 진단으로 가는 길은 산 높고 물 깊어 위험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만사를 헤아리시고 옥체를 보전하시기 바랍니다.”

“사매. 그토록 마음을 써 주어서 정말 고맙소.”

“그럼, 이만.”

순간. 막의는 쏜살같이 몸을 날려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사라진 길에 한 줄기 바람이 일었다.

달마는 막의가 사라진 곳을 향해 목례의 눈길을 보냈다.

이 순간 달마의 마음은 명경(明鏡)같았다.

은은하게 파고들던 막의에 대한 애뜻한 감정은 흘러가 버린지 이미 오래였다.

그의 마음은 장중함과 신성함 그리고 평안함과 상스러움 속에 제자리를 잡고 있었다.

달마는 생각했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은 자성(自性)을 떠나지 않는 것이요,

자성은 본디부터 깨끗하고 고요한 것이다.

자성은 본래 생멸하지 않고, 원래 스스로 구족(具足)한 것이요,

자성이 동요가 없어야 능히 만법을 생(生)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스스로 본성을 볼 수 있어야 비로소 능히 성불(成佛)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리달마는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막의를 만나 한 차례 뜨겁고 차가운 인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것에 대해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더욱 마음을 가다듬어 입 속으로 ‘아미타불‘을 연호했다.

보리달마는 발길을 재촉해 저녁 무렵 도견왕의 왕궁으로 돌아왔다.

건강을 되찾은 도견왕은 태자와 귀족 그리고 근신들을 거느리고 친히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뿐만 아니라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불조인 숙부의 노독을 달래 주었다.

달마는 영취산 대법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감개 어린 목소리로 결심을 내비쳤다.

“종파의 편견과 싸움이 너무나 극심해서 탄식만 나올 뿐이오.

스승 반야다라 조사께서 일찍이 훈계하시기를

나의 불연(佛緣)은 남천축에서 일어나 동토(東土)에서 익는다고 하셨소.

손을 꼽아 헤아려 보니 이제 동녘에서의 인연이 무르익어 교화를 행할 시기가 된 것 같소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제 서둘러 진단으로 갈 준비를 시작해야겠소.

도견왕은 숙부의 말을 법처럼 중시했다. 그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레 여쭈었다.

  “숙부님의 선광(禪光)은 그 곳 중생을 널리 비춰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데 이번에 동토로 가시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는지요?”

달마가 대답했다.

“내가 이번에 가면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인연이 무르익고 법이 전해지면 마땅히 돌아와야지요.”

도견왕은 달마의 이 말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미 숙부의 나이가 100세가 넘었는데 어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도견왕은 서글펐다.

“이 나라는 무슨 죄를 지었고, 동쪽 나라는 또 무슨 복이 있어 숙부께서 떠나시는지요?

부디 이 곳을 잊지 마시고 꼭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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