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③⑥ 동녘으로... 날짜 2017.03.12 10:57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761

비록 동녘 땅 진단으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달마의 심정은 편치 않았다.

조카 도견왕의 간곡한 말과 행동에 새삼 혈육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더군다나 남천축에서 태어나 이 곳의 물을 마시고 이 곳의 곡식을 먹고 자란 터에

어찌 향토에 대한 일말의 애정조차 없을 수 있겠는가.

도견왕은 기왕 떠나기로 한 숙부를 위해 정성을 기울여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냥 떠나시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관에게 종이와 붓, 먹과 벼루를 갖고 오라고 명했다.

숙부께 가르침의 글을 한 수 남겨 주실 것을 간청했다.

달마는 흔쾌히 청을 받아들였다.

도견왕은 친히 먹을 갈았다.

방 안 가득 묵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달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승복을 걷고 힘차게 붓을 잡았다.

일필휘지로 ‘계정혜(戒定慧)’라는 세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이른바 계(戒)는 그릇된 것과 악을 방지하여 일종의 평안함과

상서로움 그리고 조화로움의 생활을 지키는 것이고,

정(定)은 마음이 깨끗하여 어떤 환경 아래서도 마음의 평정을 지키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혜(慧)라는 것은 진리를 실증하여 의혹이 없음이니,

여러 경계에 대한 감수(感受)와 이해 능력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도견왕은 마치 생동하는 불과(佛果)를 듣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더욱 밝아지고 눈이 더욱 맑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분과 감사의 마음에 휘감겨 숙부 앞에 부복했다.

“좋은 글 영원히 간직하겠나이다. 날이 저물었으니 숙부께서는 이제 그만 편히 쉬시지요.

내일 떠나시는 데 차질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하겠습니다. 되도록 큰배를 준비하게 할 것입니다.

저도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바닷가까지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달마가 합장을 하며 읍을 했다.

“조카를 너무 수고스럽게 하는군요. 아미타불!”

드디어 새벽이 밝았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우유빛이 감돌았다.

그 우유빛은 순식간에 분홍의 둥근 원으로 변하여 빛을 발산한다.

금빛 찬란한 햇살이 바다의 수증기를 뿜어 올리며 붉게 타올랐다.

파도는 마치 합창하듯 고요를 깨트린다.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한 척의 나무배는 햇빛과 파도의 합창을 감상이나 하듯 율동을 거듭한다.

배 안에는 벌써 말린 과일과 병(餠)이 가득 실려 있었다.

큰 물통마다 깨끗한 식수가 채워졌다. 이제 수척 길이의 돛만 올리면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나는 셈이다.

이윽고 아침의 정적을 깨고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달마와 국왕 일행이 바닷가 목선 앞에 도착했다.

왕숙을 동쪽으로 떠나보내는 준비 못지않게 의식도 대단했다.

왕과 태자뿐만 아니라 대소신료들도 모두 관모를 쓰고 화려한 관복 차림으로 전송 의식을 장중하게 치렀다.

보리달마는 배에 오르기에 앞서 도견왕과 신하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국왕과 여러 대신들께서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 소승을

배웅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소.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도견왕은 갑자기 마음이 뭉클하여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님께서 이번에 가시는 저 바닷길은 광대하고 풍랑 또한 거셉니다. 각별히 몸조심하십시오.”

중신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면서 입을 모았다.

“조사님 가시는 길에 내내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절을 끝내고도 도견왕은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그때 갑자기 바다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마치 포효하듯 파도가 모래사장을 덮쳤다. 바닷가 바위에 묶여 있던 목선의 밧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풀렸다.

미처 달마가 배에 오르기도 전에 목선은 파도를 따라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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