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⑨ 한 모퉁이의 행복 날짜 2016.10.23 10:34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680

보리다라는 실로 오랜만에 왕궁으로 돌아왔다.

향지국 왕과 왕비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우선 보리다라를 환영하기 위한 연회를 베풀게 했다.

왕궁 안의 대소신료들은 정성을 다해서 준비했다.

모처럼 왕궁 안은 화기로 가득 찼다.

만나는 사람마다 눈가의 주름살을 활짝 펴고 셋째 왕자의 덕을 기리느라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리다라는 특히 아버님의 마음쓰심을 알 수 있었다.

소리없이 왕궁을 떠났던 자기의 마음을 다시 붙잡아 놓기 위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보리다라는 그런 호사스런 분위기를 가장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꾹 참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후 부왕과 모후 그리고 첫째 왕자와 둘째 왕자를 뒤따라 여러 관료가 계속해서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연회의 자리에선 의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돌아온 셋째 왕자를 칭송하는 시와 글들이 낭독되었다.

국왕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흡족해 했다.

그러나 보리다라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무표정했다. 왕후가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네가 밖에 나가 경전을 공부하고 무술을 익히고 온 것을 나도 대견하게 생각한다….

이미 경륜도 쌓은 터에 혼신의 노력으로 수련까지 하였으니 이젠 부왕을 도와야 할 게 아니냐….

백성을 제도하고 나라를 편안케 하는 일처럼 중요한 게 또 어디 있겠느냐?”

왕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나는 앞으로 정사(政事)를 너희 형제들에게 분담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셋째야, 주저할 것 없이 짐과 모후 그리고 두 형들 앞에서 솔직하게 너의 생각을 말해 보거라.”

부왕의 말을 받아 첫째 왕자 월정다라(月淨多羅)와 둘째 왕자 공덕다라(功德多羅)가 이구동성으로 보리다라를 재촉했다.

“아우야, 우리도 네가 학문이 깊고 무술의 경지도 높다는 것을 잘 안다.

치국안민(治國安民)의 도(道)에 대해서도 너는 분명 많은 방책을 갖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서 아버님께 말씀드려라.”

보리다라는 자세를 바로하고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형님들께서 말씀하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도를 어찌 제가 감히 못 들은 척 하겠습니까?

제가 침묵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문젠데?”

국왕과 왕후가 동시에 물었다.

“저는 한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다만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게 고작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한모퉁이의 행복일 뿐입니다.

나라란 한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나라 밖에도 많은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또한 천축 이외의 세계도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라고?”

국왕은 보리다라의 대답에 다소 엉뚱함을 느꼈다.

그러나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사회의 부패상과 백성의 고통에 대해서 비분과 불만을 갖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니 나라의 정치에 직접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냐. 현실을 마주쳐 보면 알 것이다.”

“아버님!”

보리다라는 부왕에게 그의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하려고 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널리 중생을 구하고 만백성을 제도하려는 결심을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왕은 마치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알고 있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래, 그래. 우리가 이 나라를 잘 다스린 후에는

당연히 다른 나라까지 세를 넓혀 그쪽도 다스릴 수 있도록 해야지…. 그렇고 말고.”

국왕의 이 몇 마디는 보리다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부왕이 자기의 말을 그토록 잘못 이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도를 벗어나 남의 나라로 십만 팔천 리를 넓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고작 죄를 짓는 일에 불과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부왕의 말을 되받아 확실하게 진정한 도와 법의 길을 천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의 상황에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됐어, 됐어!”

국왕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셋째가 돌아온 것을 환영하는 모임이니 더 이상 국사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나중에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연회를 시작하라!”

연회가 전행되는 동안 보리다라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부왕과 모후 그리고 두 형들이 연회장을 떠난 다음 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동(侍童)들에 둘러싸여 거실로 돌아왔다.

실내의 은촛대엔 이미 환하게 불이 밝혀 있었다.

한쪽 구석의 책상엔 예전에 놓아 둔 대로 경서가 겹겹이 쌓여 있고 문방사우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꽃으로 수놓은 단향목 침대에선 비단이불이 담박한 향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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