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 60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보리달마는 청봉산의 작은 절에 머물고 있었다.
이 곳은 반야다라를 스승으로 모신 최초의 절일 뿐 아니라 산수가 그 어느 곳보다 빼어났기 때문이다.
중생들을 선공(禪功)과 불법(佛法)으로 교화시키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곳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이미 보리달마에게 귀의한 여섯 종파의 문도들이 모두 이 곳에 와 조사를 모시면서 하늘같이 따랐다.
이 날도 전과 다름없이 장중하게 저녁예불을 올렸다.
본당 안의 보리달마는 방석 위에서 눈을 감고 입정에 들어간 지 오래되었다.
그 앞엔 여섯 종파의 문도들이 모두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정 상태는 침묵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감실 위에 켜진 한 쌍의 초에서 갑자기 불꽃이 탁 튀었다.
보리달마가 입정에서 깨어났다.
불꽃 튀는 소리에 놀라기라도 한 듯 탄식하며 소리쳤다.
“도견왕(導見王), 죄악입니다. 죄악입니다!”
여러 승려들은 고요함을 깨면서 보리달마가 갑자기 큰 소리로 도견왕을 부르는 소리에 놀랐다.
모두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혹스러워했다.
일찍이 전혀 그런 일이 없던 조사께서 무슨 일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남천축의 향지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향지국왕이 서거한 뒤 60여 년 사이에 왕위는 3대째 바뀌었다.
현재의 도견왕은 보리달마의 조카다.
한데 이 도견왕은 비록 이름은 도(導)견(見)이지만 할아버지나 아버지 때와는 전혀 달랐다.
조상이 숭상하던 전통을 반대하고 나아가 불(佛)법(法)승(僧) 삼보를 비방하고 훼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신하들에게 이렇게까지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그대들이 잘 아는 것처럼 모두 불교를 믿어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수명은 모두 길지 않아서 재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돌아가셨다.
불교가 아무 위력도 없음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흔히 선악은 반드시 응보가 있다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은 중들이 마음 속에서 멋대로
지어 낸 것일 뿐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도견왕은 명령을 내려 전국의 사찰을 폐쇄시키도록 했다.
심지어는 선왕의 위패를 모신 절까지도 문을 닫으려고 들먹거렸다.
보리달마에게 이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향지국으로 직접 가서 도견왕을 교화시키고 왕명을 철회토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 그가 입정에서 깨어나면서 지른 고함은 바로 그런 내심을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뜻이었다.
보리달마 앞에 엎드려 있던 승려 가운데 바라제와 종승(宗勝)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몸을 일으켜 절을 하며 말했다.
“불법에 재난이 닥친 이 마당에 조사께서는 어떤 결단이 있으신지요?
저희에게 가르침을 열어 보여 주십시오.”
보리달마는 지긋이 바라제와 종승을 쳐다보았다.
눈길이 바라제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는 바라제가 도견왕과 서로 인연이 있음을 알았다.
그를 보내면 도견왕을 설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도견왕이 삼보를 비방하고 사찰을 폐쇄하려는 것은 마치 잎사귀 하나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생각을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
보리달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라제보다도 종승이 먼저 나서서 고했다.
“도견왕을 설복시키는 것은 자질구레한 일입니다.
조사께서 직접 수고하실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불법은 얕으나 제가 가서 설복시키겠습니다. 허락해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