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②① 종승과 도견왕의 만남 날짜 2017.02.17 11:07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694

보리달마는 종승의 됨됨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바라제와는 공력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종승과 도견왕은 서로 인연이 없었다.

이번에 종승이 나서면 정반대의 결과로 귀결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그대가 비록 분별지는 있으나 도는 아직 익지 않았네. 그만두는 것이 좋겠구먼!”

이 말을 들은 종승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그는 보리달마가 자기를 믿어 주고 나아가서 밀어 주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만약 자기가 가서 도견왕을 설복한다면 명예와 찬사가 온통 자신에게 쏟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28대 조사의 위신도 깎일 것이 아닌가.

그것이 싫어서 만류하는 것으로 종승은 지레 짐작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물러설 종승이 아니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자기의 뜻을 관철할 심산이었다.

종승은 다시 몸을 깊숙이 굽혀 절하면서 말했다.

“조사께서 저의 소청을 받아 주실 것을 거듭 사뢰옵니다.

저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에 가면 반드시 도견왕을 바르게 이끌고 그 모든 영광은 조사님께 돌릴 것입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조사님 문하의 사문입니다.

제가 도견왕을 교화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조사께서 전수하신 불법이 천하제일임을 증명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종승은 말을 마치자 보리달마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쏜살같이 나가 버렸다.

밤은 어둡고 고요했다.

일년 내내 여름같은 남천축이지만 밤바람은 제법 서늘했다.

도견왕이 사는 궁전에는 밤늦도록 등불이 휘황찬란했다.

그러나 도견왕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있어 살기마저 감돌았다.

도견왕은 책상 위에 쌓인 상소문을 대충 훑어보고는 마룻바닥에 던져 버렸다.

상소문은 한결같이 삼보(三寶)를 경시하고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거듭되는 대신들의 상소와 직소에 도견왕은 짜증이 나다 못해 울화가 치밀 지경이었다.

도견왕은 이미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한 나라의 임금은 곧 천제(天帝)이거늘 불도(佛道)의 제약을 받을 까닭이 없었다.

더군다나 중들의 사설(邪說)을 들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설령 그들의 말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불도에서는 내 몸이 바로 부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내 몸이 부처라면 밖에서 구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스스로 내린 결론에 그는 통쾌함을 느꼈다.

한 번씩 책상 위의 촛불이 바람결에 심하게 흔들렸다.

그 때마다 도견왕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엇갈려 주름이 잡혔다.

냉랭한 얼굴에 감도는 음산함은 섬뜩한 느낌마저 풍겼다.

이럴 때는 누구도 왕과 맞닥뜨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바로 그 때 내관(內官)이 고승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도견왕은 눈을 부릅뜨고 고승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먼지가 잔뜩 묻은 회색 가사를 입은 꼴이 어디서 본 듯싶었다.

“언젠가 만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아아, 그렇군. 종승 대화상이 아니시오?”

도견왕은 일찍이 종승이 왕궁에 탁발하러 왔던 일을 떠올렸다.

종승은 그 때 무상종의 두 번째 수좌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그가 왜 불쑥 찾아온 것일까? 혹시 사찰을 폐쇄하라는 명을 막기 위해 온 것은 아닐까?

도견왕이 자기를 알아보자 종승은 흐뭇했다.

얼른 합장하면서 깊이 머리를 숙였다.

“늦은 밤에 이렇게 대왕을 찾아뵙게 되어 불경죄를 지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에 도견왕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한 장의 상소문마저 바닥에 던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불경죄인 줄 알면서 왜 왔소? 물러가시오!”

종승은 당황했다. 겸연쩍게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다음 더욱 공손하게 합장하며 말했다.

“대왕께 삼가 아룁니다. 빈승이 이 밤중에 온 것은 대왕께 보시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럼, 무엇 하러 이 밤중에 나를 찾아왔단 말인가?”

도견왕은 기세등등하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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