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비희사’를 닦으라하나 !

우리는 뭔가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과보를 기대합니다.

상에 머물지 말라고 그토록 일렀거늘 이 무슨 소승적인 생각이고

좁쌀만한 중생심이냐고 꾸짖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법이고,

가능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잘 알아서 좋은 결과를 내는

선업을 많이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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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원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면 거기에 어떤 과보가 올지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대지도론>제20권에는 자비희사 사무량심을 부지런히

익히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과보가 온다고

넌지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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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삼매(慈三昧)에 들면 첫째,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둘째,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

셋째, 칼과 같은 흉기에도 다치지 않는다.

넷째, 뜻하지 않은 불행한 최후를 맞지 않는다.

이 네 가지는 착한 신이 그를 지켜주기 때문이니, 그가 수많은

생명체를 이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하늘의 신 범천의 경지 즉 색계(色界)에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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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삼매 뿐만 아니라 비, 희, 사삼매의 과보도 이와 같다는 것이

<대지도론>의 입장입니다. 앞의 네 가지는 살아가는 동안

험한 일을 겪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일 테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이번 생 이후의 일을 말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초기경전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불교경전이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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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희사 마음 닦음 고도의 수행

사무량심 닦으면 범천에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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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떤 일(업)의 과보는 오직 다음 생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받는다는 점을 먼저 밝힌 다음, 죽고 나서

다음 생에 받을 과보를 일러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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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죽음 이후의 일도 언급하는 것이 특징이기는 하지만,

불교는 지금 살아 있는 이 현세에 대해서 먼저 말한 뒤에 내세를

언급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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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과보 가운데 마지막 범천의 경지가 흥미롭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 범천은 세상을 창조한, 매우 위력이

큰 신으로 추앙받고 경배 받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느님’이었지요.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하고 제사도 지낸 사람들이

당시 바라문 계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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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세상을 ‘창조한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 바라문들의 이런 생각과 행동을 조금도 생각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내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자비희사의 마음을 열심히 닦고 실천하면 범천 즉

하느님의 나라에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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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느님을 인정한다는 말일까요?

속단하면 곤란합니다. 왜냐 하면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수행을 치열하게 하는 것은 그 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고 싶어서 부지런히 자비희사 마음을 닦으면

어느 사이엔가 하느님 나라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더 크고 깊은 차원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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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 설명은 이만 줄이고 <대지도론>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지도론>에는 부처님께서 왜 사무량심의 과보로 범천을 언급하셨는지

이유를 물으며 이렇게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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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천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라문의 법에는 늘 범천에 태어나기를 원했는데, 만일 중생들이

자비희사를 닦으면 범천에 태어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저들은 모두가

자비희사를 부지런히 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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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무량심을 닦으면 범천에 태어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음욕(淫欲, 성욕)을 끊은 하늘을 범(梵)이라 말하고,

음욕을 끊은 법을 범행(梵行)이라 말한다”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는데,

이 구절을 음미하자면, 자비희사 마음을 닦는 것은 일상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도의 수행일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 혜룡/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