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② 셋째 왕자의 잠적 -1 날짜 2016.08.03 15:28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1009

< 이 글은 현대불교 신문에서 연재 되었던 '이규형이 쓰는 달마이야기'에서 옮겼습니다. >

달마(達摩)대사의 본래 이름은 보리다라(菩提多羅).

오늘날의 남인도 즉 남천축(南天竺)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어느 날 향지국의 궁성 안에서는 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의 놀랄만한

소식이 은밀하고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셋째 왕자가 깜쪽같이 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셋째 왕자를 모시던 내관과 시녀들은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왕자 곁에서 시중을 들었는데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보리다라 왕자는 왕과 왕후가 가장 기대를 걸었던 존재가 아니던가.

비록 셋째이긴 했지만 나라 안팎에선 이미 유일한 희망이요 후계자라는 소리를 들어온 지 오래였다.

그만치 보리다라 왕자는 출중했다. 숭고함과 존귀함 그리고 뛰어난 재능은

누구도 감히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데 국왕은 뜻밖에도 셋째 왕자가 떠나 간 일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았다.

전혀 화를 내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현실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국왕은 이미 그럴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리다라는 타고난 본성이 무엇에 매이기를 싫어했다.

산천에 노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품은 그의 형들과 전혀 달랐다.

그는 사치스러움을 부끄럽게 여기고 탐욕을 사갈(蛇蝎)처럼 싫어했다.

어려서부터도 부(富)와 귀(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제왕학(帝王學)을 닦으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늘 골똘히 생각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는 첫째 부조리(不條理)를 타파하여 중생들이 편안하게 잘 살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 무공(武功)을 연마하여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리다라는 오래 전에 이런 견해를 부왕에게 말한 일이 있었다.

왕은 셋째 왕자의 생각이 마치 자기의 속마음을 꿰뚫은 듯 싶어 흡족해 했다.

국왕 자신도 바로 그 두 가지 점에 중점을 두어 외적의 침입을 격퇴하여

나라의 기반을 공고히 했고 나아가서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셋째 왕자의 잠적 사건을 불문에 붙이면서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하나는 보리다라의 행적을 찾되 그의 행동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

또 하나는 어느 곳에 있는지 알면 그에게 금은보화를 좀 보내서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국왕의 참뜻이 전해지자 궁 안의 사람들 모두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몰래 왕궁을 떠나온 보리다라는 명산을 두루

돌면서 자연 속에 몸을 던졌다. 오래된 절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

학덕이 높은 스님에겐 경전의 뜻을 물었고 무도에 능한 스승을 만나면 연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 곳 천상산(天象山)에 자리한 천상사에 머문 지도 벌써 두 해가 지났다.

보리다라는 항상 해 오던 대로 새벽 수련에 열중했다.

어슴푸레한 새벽 안개 속에 감싸여 있는 천상산 자락은 신비한 기운 마저 감돈다.

아직 새도 울지 않고 벌레도 깨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맑고 서늘한 바람이 절 앞의 천상석(天象石)을 어루만진다.

천상석은 마치 살아 있는 코끼리처럼 귀, 코, 눈, 꼬리, 발이 뚜렷했다.

왜 천상산이란 산 이름이나 천상사라는 절 이름이 비롯되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그런 석상이었다.

보리다라는 천하를 두루 다녀 보았지만 대자연과 사찰과 석상이 이처럼

신묘하게 조화를 이룬 곳은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키가 팔척이 넘는 보리다라는 천상석을 맴돌면서 검무(劍舞) 수련을 시작했다.

그의 몸에선 비범한 예지의 신운(神韻)이 풍겼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을 손에 잡고 움직이는 품세는 이미 어떤 경지를 넘은 듯 싶었다.

때로는 태풍이 나무를 흔들 듯 칼바람이 일고, 때로는 가랑비처럼 잔잔하게 춤을 추었다.

고요하게 서 있을 땐 바위 같았고 뛰어오르면 마치 승천하는 용인 듯 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어슴푸레하던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 온다.

숲 속의 새들도 보금자리에서 깨어났는지 푸드득 날개 소리와 함께 지저귀기 시작했다.

칼을 거둔 왕자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천상석 위로 뛰어올라가서 잠시 쉬고 싶었다.

천상석은 사람 키보다도 몇 길이나 높았다.

가파르기는 마치 절벽 같았다.

보통 재주론 결코 미칠 수 없는 그런 높이에 코끼리 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보리다라는 두 손을 힘차게 뿌리치며 훌쩍 몸을 날렸다.

구름을 밟고 바람을 타는 비술(秘術)로 높이 사뿐히 날아올라 천상석의

등마루에 가볍게 내려섰다. 바로 그때 석상 아래에서 은방울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대단한 솜씨예요! 정말 대단해요….”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