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⑥ 들통난 왕자위 정체 날짜 2016.08.27 09:59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875

막의는 총총히 뜰을 가로질러 선방을 찾았다.

뜰 앞에는 보리수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막의는 보리수를 무척 좋아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6년의 고행 끝에 마침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일찍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나무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성, 즉 곧은 줄기와 맑은 기운으로 윤기가 감도는 잎새는 그녀를 황홀케 했다.

보리수의 푸른 잎을 보고 있으면 순박함과 고결함 그리고 탈속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보리수의 그런 특성은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게다가 ‘보리’라는 두 글자가 들어있는 나무 이름은 사형 ‘보리’다라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피부에 와 닿는 가까움을 느꼈다.

어떤 땐 보리수를 사형의 화신인 양 착각하기도 했다.

막의는 보리수 옆을 지나면서 발타대사가 한 말을 새삼스럽게 곱씹었다.

대사께서 사형을 선방으로 옮겨준 것은 너무나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상념에 빠졌다.

때마침 보리다라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선방에서 뛰어나왔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보리다라는 황급히 물러섰다.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사매…, 내 불찰을 용서하시오!”

그는 합장하며 사과했다.

  “….”

황망하기는 막의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일에 두 볼이 발개졌다.

보리다라의 사과에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러나 곧 평소 모습을 되찾았다.

“오히려 제가 주의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제 잘못인데 사형께서 사과하시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한데, 사형께선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나오시다니….”

사실 두 사람이 이처럼 부딪친 일은 한번도 없었다.

보리다라는 무술이 출중한 막의가 자기를 피하지 못한 것을 내심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사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

  “예….”

막의는 보자기를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대사님의 명을 받들어 사형의 잃어버린 물건을 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이라고?”

보자기를 보는 순간 그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열어 볼 것도 없이 보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보석들은 급할 때 요긴하게 쓰라고 부왕(父王)께서 사람을 시켜 몰래 보내온 것이었다.

궁성을 떠날 때 보리다라는 몸에 지닌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생활하는 데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불문(佛門)의 자비로움에 늘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이 보석이 사람의 눈에 발견될까 싶어 무척 신경을 썼다.

만약 그렇게 되면 왕자의 신분이 탄로날 뿐만 아니라 일대 소란이 벌어져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요사채의 침대 밑에 깊숙이 감췄다.

평소 행자승들이 청소할 때도 그곳만은 지나치는 것을 확인까지 한 터였다.

이렇게 사매가 보따리를 들고 오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보리다라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선방으로 옮겨 준 까닭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발타대사를 찾아가서 다시 요사채로 돌려 보내 줄 것을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아직은 여러 사형들과 함께 수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대사께서는 모든 비밀을 아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눈앞에 서 있는 사매도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가 염려하던 일이 마침내 터져 버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향지국 같은 큰 나라의 왕자는 작은 나라의 왕과 같은 신분이다.

어찌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서슴없이 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신분이 드러나 이곳 사찰 안팎에 소문이 퍼지면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 할 것이고 만나기조차 두려워할 것이 뻔하다.

평소 그의 잘못을 거리낌없이 지적해 주던 사매마저도 그를 경원할 듯 싶어 안타까웠다.

사실 이런 모든 것은 전혀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보리다라는 막의를 흘깃 보면서 아무 말도 없이 보따리를 받았다.

“사형! 당신은…?”

이미 내막을 알고 있는 막의는 여전히 의혹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큰 나라의 왕자라면 무엇이든 부족한 게 없을 것이고, 근심걱정 또한 없을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휘황찬란한 보석을 몸에 걸치고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 아닌가.

한데, 무슨 까닭으로 속세를 버리고 이곳 깊은 산 속 절간으로 들어온 것일까.

만약 그가 정말 왕자라면 그를 향한 그녀의 마음도 여기서 접을 수밖에 없다.

천박한 평민계급의 딸이 어디 감히 왕자를 마음 속에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보리다라는 막의의 이런 마음 속 흐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결코 목석이 아니었다. 그녀를 끔찍하게 생각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평민의 딸이라곤 하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구태여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그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애정이 끓어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오래 전에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를 굳게 지키기로 다짐한 그였다.

사실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성군이 되어 백성에게 선정을 베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를 잘 하더라도 그것이 만백성을 제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불법(佛法)만이 무량하여 진리의 비를 두루 뿌려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세속의 생각을 끊어버리고 진지하게 수행에만 전념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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