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마 이야기 ⑦ 보리다라의 변 날짜 2016.08.27 10:04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956

보리다라는 왕자라는 신분이 노출된 이상 여기서 더 머무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막의에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떠듬떠듬 말문을 열었다.

“사매! 그대가 이미 모든 것을 알았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소….

다만, 일부러 속이려 한 것은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소!”

“사형은 정말로 왕자이신가요?”

막의의 말투는 이미 극존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왕자라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겠소.”

“어쩐지….”

“사매! 오해하지 마시오…. 내가 왕자라고 해서 그대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오…. 나는 오직….”

  “그만 하세요!”

막의도 보리다라가 왕자라는 신분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따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감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 가지 묻겠는데요…. 아직도 나를 사매로 생각하시나요?”

보리다라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사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저는요?…”

막의는 갑자기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마치 바람에 너울거리는 촛불처럼 춤을 추었다.

그 웃음소리는 그의 마음 속에 긴 여운을 남기며 퍼져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여전히, 한 사람은 선방문 안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선방문 밖에 선 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시간은 멈추어 선 듯 싶었다.

예불을 올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에 실려 온 종소리는 두 남녀의 귓가에 울려 맴돌았다.

종소리 하나하나는 이윽고 그들의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온몸은 종소리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사매!”

보리다라가 정적을 깼다.

그리고 막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렇게 진지하게 그리고 뚫어지도록 쳐다본 일은 일찍이 없었다.

막의의 얼굴도 달아올랐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여기서 오래 머물면서 사매와 함께 무술을 닦고…, 경전 공부도 할 작정이었소….

그런데 내가 왕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소….

왕자라는 나의 신분 앞에 모두가 허리를 굽히는 천박함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소….

심지어 발타대사조차도 특별 대우를 하시다니…. 분명,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뭐 어때서요? 본래 마땅히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막의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본래 이래야 된다고?”

보리다라는 큰 소리로 웃었다.

“왜 이래야만 되지? 사매! 일이 이렇게 된 바엔 나는 역시 궁으로 돌아가서 왕자노릇이나 할 수밖에 없겠어….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 보석은 대사님께 전해 주었으면 좋겠어….

절 안에서 피우는 향을 사는 데 쓰시도록….”

“궁성으로 돌아가시려고요?”

  막의는 건네받은 보자기 속의 보석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본래 이래야 된다고 하지 않았소?”

  보리다라는 가슴을 젖히면서 짐짓 큰 소리로 웃었다.

  “사형! 우리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지도 3년이나 되었으니… 가시는 길에 좀 바래다 드려도 괜찮겠지요?”

  “좋아요! 고맙소!… 사실 그동안 나의 공부가 이나마 진전을 이룬 데는 사매의 도움이 컸소….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보리다라의 얼굴에는 보기 드물게 정다운 기운이 감돌았다.

막의는 그런 표정을 보자 행복했다.

정겨운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보리다라가 겉으로는 무척 냉정해 보이지만 속으론 다정다감한 인간미의 소유자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 우뚝 솟은 보리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보리다라를 다시 한번 올려보았다.

나무가 사람이고 사람이 나무인 듯 환영(幻影) 속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늘은 까마득했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선방 앞 연못의 맑은 물은 저녁노을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였다.

선방 주변을 겹겹이 싸고 있는 숲엔 온갖 새들이 지저귀며 둥지로 찾아 들었다.

선경이 따로 없었다. 이곳이 바로 선경이다.

선방 앞에 서 있는 보리다라와 막의의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글쓴이 비밀번호
보이는 순서대로 문자를 모두 입력해 주세요
등록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