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The Essence Of Buddhism) 날짜 2016.06.06 21:19
글쓴이 무법정사 조회 1106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The Essence Of Buddhism)

미안마 산먀띠따 선원장 빤디짜 스님 법문 명강의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부처님을 좋아하시고,부처님의 법을 따르시고,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에 귀의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묻는다면 한 마디로 무엇이라 대답 하시겠습니까?
일단 그 핵심을 말하기 전에 종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교,힌두교,기독교, 이슬람교 등 여러 가지 종교가 존재합니다. 이 종교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종교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나옵니다.모든 종교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나타났고, 인간 또한 다들 행복해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절에 오는 사람도, 교회에 가는 사람도 모두 행복 하고 싶어서 찾아갑니다. 쉽게 말해서 무구나 행복을 위해 종교를 찾고, 그래서 종교가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행복을 찾아서 이 자리에 오셨을 것입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계속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 같으니까 젖을 먹기 위해 울었습니다. 또 자랄 때는 행복을 찾기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남자는 여자를 찾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이유도 아이를 통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렇게 해서 행복하셨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행복을 찾고 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이고 그 다음이 일본입니다.공교롭게도 두 나라 모두 잘 사는 부자나라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같은 상황을 보면 재산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佛法은 행복으로 가는 길 제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고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종교라는 것은 확실하게 행복을 줄 수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묻는다면, 쉽게 말해서 행복해지는 길을 가르쳐 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께서 주려고 하는 행복은 한계가 있는 행복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옷을 주는 일은 신통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일 안해도 먹을 수 있게 해 줄 수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생로병사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유, 진정으로 완벽한 행복을 찾는 길입니다.다시 말하면 불교의 목적지인 니르바나로 향하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행복을 찾는 길은 정확히 세 가지입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가르침은 경전, 율전, 논전 이렇게 삼장으로 구분되며 그 핵심은 계. 정. 혜입니다.
율장(律藏)의 핵심은 계(戒) 밖에 없습니다. 경장(經藏)의 핵심은 정(定)입니다. 즉,마음집중입니다. 논장(論藏)의 핵심은 지혜(智慧)입니다.부처님의 가르침, 즉 행복으로 가는 길은 계. 정. 혜의 세가지 밖에 없습니다. 불교가 진짜 의미 있는 종교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계.정.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탐. 진. 치 때문에 불행
계. 정. 혜는 행복의 길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욕심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탐(貪), 진(嗔), 치(痴) 때문입니다. 돈 있는 사람도, 명예가 있는 사람도, 대통령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탐, 진, 치에 있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탐, 진, 치를 어떻게 벗어나는 지가 확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괴롭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탐, 진, 치 때문입니다 끝이 안 보이는 그 길을 계속 걸어 오면서도 일이 바빠서 수행을 못하고, 공부를 하지 못한다고들 합니다. 공부는 시간에 상관없이 해야 합니다.
탐, 진, 치를 버릴수 있나 없나 하는 그것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첫째,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지계(持戒)입니다. 팔리어로 실라(sila)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하면 습관입니다. 사람마다 언어습관, 행동하는 습관 등이 있는데, 그 습관을 좋게 만드는 것이 지계입니다. 몸을 해치지 마라, 몸으로 나쁜 짓을 짓지 마라,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등 다섯 가지 계가 오계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에서 지계가 오계, 십계, 사미계, 비구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계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에 따른 것입니다.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 차 운전을 험하게 하는사람, 한마디 말로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 모든 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나의 행동, 우리가 한 말, 이 모든 것에서 계를 지겨야 합니다. 계를 지키면 행복 합니다.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 이번 생애도 행복하고 다음 생애도 행복합니다.
두 번째는 정(定)입니다. 정이라는 것은 지계로 챙기지 못하는 마음을 챙기는 방법입니다.
말도 예쁘게 할 수 있고 행동도 챙길 수 있지만 마음은 어떻게 챙겨야 합니까. 마음을 챙기는 것은 수행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하는 염불에서 '나무'는 절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즉, 내 마음을 부처님께 바치면서 다른 생각 못하게, 나쁜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챙기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대상을 하나 잡아서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매(三昧)이고 이를 팔리어로 사마디(samadhi)라고 합니다.

지혜는 내 몸과 마음에서 찾는 것

마음을 좋은 대상에 집중하면 나쁜 생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1초 집중하면 1초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1분을 집중하면 1분 동안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한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을 이어간다면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신통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정은 곧 마음을 챙긴다는 의미가 됩니다.
수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삼매의 수행과 지혜의 수행입니다. 마음의 대상을 하나로 정해서 도망가지 못하게 계속 묶어내는 수행은 사마타(samatha), 즉 마음집중 수행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나무석가모니불'을 하는 염불수행도 그 목적지는 선정입니다. 그리고 선정 수행의 최고 지점은 범천입니다. 그런데 범천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반면 지혜의 수행은 위빠사나(vipasyana)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오온이라고 하는데, 오온을 고통으로 보고, 무상하다, 계속 변한다, 일어나면 사라진다, 그렇게 불수 있는 것을 '무상을 본다'라고 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속에, 그리고 원인과 결과 속에 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내 몸과 마음에서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지혜의 수행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탐 · 진 · 치에서 일어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탐 · 진 · 치를 버리는 길로 계속 가야 합니다.
탐 · 진 · 치에도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번뇌는 항상 숨겨져 있습니다. 지난 생, 그리고 이번 생, 다음 생까지 숨겨져 있는 번뇌가 있습니다. 또한 화가 일어나면 행동을 해버립니다. 욕을 해버립니다. 이렇게 탐 · 진 · 치의 상태가 세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부처님께서 왜 계 · 정 · 혜 세 가지로 가르침을 설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탐 · 진 · 치의 세 가지 상태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몸이나 입으로 일어날 때 지계로 막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일어나는 탐 · 진 · 치를 막기 위해서 지계를 가르칩니다. 계를 잘 지키면 행복합니다. 스님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행복한 이유는 계를 많이 지키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행복 지름길

두 번째, 마음속에 일어나는 번뇌를 막기 위해서 경을 가르칩니다. 순간순간마다 계속 수행을 해서 마음속에 탐 · 진 · 치가 일어날 기화가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순간마다 번뇌의 대상이 없어지고 집중하는 다른 대상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숨겨져 있는 번뇌를 뿌리까지 뽑기 위해서 위빠사나라는 지혜 수행을 합니다. 이 세 번째 이전의 수행은 부처님께서 나오시지 않아도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수행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신통력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빠사나는 부처님께서 나오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즉,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만이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미세한 번뇌까지 뿌리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완벽한 행복'이라고 하는 니르바나로 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리어로 표현하면 사사나(sasana)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배워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계도 아시고, 정도 아시고, 혜도 아십니다. 법을 배웠으니 실천을 해야 합니다.
계를 지키십시오, 정을 수행하십시오, 지혜를 수행하십시오, 그렇게 모든 수행을 마치시고 니르바나까지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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